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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역대 최대 770억 기부 여성 CEO "과학은 모르지만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압니다" -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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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7.23 17:11 | 수정 2020.07.23 17:14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 이병철 삼성 창업주 단독 인터뷰 경제기자 출신
신군부 탄압 해직 언론인… 40년 목장⋅모래채취⋅부동산으로 富 일궈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겪었던 어린 시절… 국력 중요성 일찍이 알아"
"나에게는 피땀인 재산 내놓았다… 노벨상 수준 연구로 국력 발전하길"
23일 오후 2시 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학술문화회관 스카이라운지에서 개최된 ‘이수영 회장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에 참석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왼쪽 두번째)과 신성철 KAIST 총장(왼쪽 첫번째)./김윤수 기자
"과학은 모르지만 과학의 힘이 얼마나 큰지는 압니다."

한국인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해달라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에 지금까지 770억원 규모 재산을 기부한 이수영 광원산업 회장은 기부 이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같이 운을 뗐다. 올해 83세의 그는 "과학기술 수준이 곧 국력"이라는 교과서 같은 대답을 되풀이했지만 누구보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23일 오후 2시 대전 카이스트 본원 학술문화회관 5층 스카이라운지에서 열린 ‘이수영 회장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에서 이 회장은 직접 소회를 밝혔다. 서울신문에서 시작한 17년의 기자 생활과 40여년의 회사 경영 경험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의 인파 앞에서 긴장됐는지 표정은 굳어있었고 운을 떼는 목소리는 떨렸다. 이날 주인공인 만큼 얼굴이 활짝 보이게 마스크 대신 식당에서 쓰는 위생용 투명 입가리개를 홀로 썼다.

이 회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나라 없는 설움을 잘 안다"고 했다. 경기여고 1학년 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가난의 설움 역시 잘 안다"고 했다. 1976년 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관민합동 수행기자로 선발돼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태극기가 그려진 명찰을 황급히 가렸다고 했다. 그는 "열등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우리나라가 생존하고 잘 살려면 과학기술이 앞서야 한다는 사실을 어렸을 적부터 이해하게 됐다"고 강조했다.

마음이 있다고 무작정 기부를 할 수 있는 재산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다같이 어려웠던 시절 평범한 가정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학업 성적이 좋아 경기여중,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사법시험에 한차례 낙방한 후 건강 악화로 공부를 접고 법조인의 길을 그만뒀다.

1963년 서울신문 입사를 시작으로 한국경제신문·서울경제신문을 거치며 17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이 회장은 여기자를 사회부·교열부로 주로 보내던 당시 분위기 속에서 경제부 기자로 인정받았다. 이병철 삼성전자 창업자를 단독 인터뷰했고 1971년에는 ‘언론인 특별취재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탄압 시기에 해직돼 기자 생활을 마치게 됐다.

이 회장은 1971년 돼지 2마리를 들여와 작은 축산업체 ‘광원목장’을 설립했다. 저녁에 목장일을 위해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취재를 하고 낮에는 기사를 썼다. 기자 일을 그만둔 후에는 목장일에 집중했고 그 결과 돼지 수를 1000마리로 늘렸다.

이 회장은 당시 진행되던 산업화에 건설 자재인 모래의 수요가 높아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돼지 사육을 위해 넓힌 목장 부지를 통해 모래 채취 사업을 벌였고 오늘날 기부의 기틀이 된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다.

1988년에는 부동산임대업에 뛰어들어 광원산업을 설립했다. 주로 폐허가 돼 잘 쓰이지 않는 건물들을 인수해 가꾼 후 임대료를 받는 일이 사업의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여의도백화점 빌딩 5층 전체를 인수했고 2000년대에 들어서는 사무실 월세만 3만달러(약 3600만원)인 미국의 현지 건물을 인수했다. 이번에 카이스트에 추가로 기부한 재산이 미국에 있는 이 회장의 개인 부동산이다.

이 회장이 과학기술계 기부를 본격 실천하기로 결심한 것도 2000년대 들어서다. 지난 2005년 황우석 박사(에이치바이온 대표)의 줄기세포 연구 내용을 보고 비전을 느껴 직접 기부하려고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황우석 사태’로 인해 결심을 취소하게 됐다. 이후 서남표 전 카이스트 총장의 인터뷰를 접하고 노벨상 연구를 수행할 과학기술 후학 양성에 그가 적격이라고 판단, 2012년 80억여원을 처음으로 기부했다. 이날까지 세 차례에 걸쳐 모두 770억여원을 기부해 카이스트 역대 최고기부액을 기록했다.

이날 동석한 같은 대학 출신의 남편 김창홍 변호사도 이 회장의 거액 기부를 만류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회장은 "작년 9월 기부 의사를 밝히고 나서 최근 건강이 나빠져서 계속 누워있으니까 남편이 ‘그 돈 언제 기부할거냐’라고 물을 정도로 내 결정을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힘들게 번 돈이기에 이 회장은 "나에게는 피땀인 재산을 내놓았다"고 강조하며 "카이스트가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귀하게 써줄 것"을 당부했다. 이어 "향후 추가 기부 계획도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기부금은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고 ‘싱귤래러티(Singularity·특이점) 교수 제도’를 지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재단 운영에는 광원산업 경영진이 직접 참여한다.

카이스트는 이미 지난해 노벨상 수준의 연구 지원을 위해 싱귤래러티 교수 제도를 기획했지만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던 차에 이 회장의 기부 의사를 들었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암울한 시기에 카이스트 발전의 원동력이 될 기쁜 소식"이라며 "기부의 목적이 이뤄지도록 카이스트 구성원을 대표해 약속한다"고 화답했다.

싱귤래러티 교수 제도는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는 획기적인 단계를 뜻하는 ‘특이점’ 수준의 연구 수행을 위해 가능성 있는 젊은 교수 위주로 연구 주체를 선정, 10년간 연구비를 제공하고 해당 기간 논문·특허 수에 따른 실적 평가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이 회장은 2018년 출간한 자서전 ‘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를 통해 자신의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왼쪽)이 이수영 회장(오른쪽)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카이스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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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23, 2020 at 03:11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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